2025년 8월 12일 부로 나는 전역하게 되었다. 이번 글에서는 군생활 동안 있었던 일과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서 이것저것 이야기 해보려고 한다.
초-간단 요약: 좋은 친구를 얻고, 발목을 잃었다.
나는 운전병으로 입대하게 되며, 신병교육대대에서 5주간 기초군사훈련을 받은 뒤, 수송교육연대에서 운전병이 되기 위한 후반기 교육을 받게 되었다. 이후 통신단의 통신대대의 통신중대로 자대배치를 받게되었다.
해당 부대에서 중형차량 운전병으로서 복무하였으며, 주 업무는 세차였다… 운전대는 거의 잡아보지 못했다. 부대 특성 상 장거리 배차가 많지 않으며, 개인 차가 있긴 하지만 신병 운전병이 배차를 나갈 수 있게 되기까지 나름의 절차와 시간이 필요한데, 이 과정에서 운이 나쁘면 얼마든지 밀릴 수 있다. 내가 그런 케이스였다.
일과 시간 동안은 주로 부대 내의 수송부로 이동하여 수송부 작업을 했고, 개인정비 시간에는 주로 생활관에서 휴식을 취하거나 사이버지식정보방 (이하 사지방) 에서 공부(주로 코딩) 을 했다.
부대 특성 상 파견을 종종 간 적이 있다. 다만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타이밍이 대부분 좋지 않아 운전을 할 기회가 거의 없다시피 했다. 오랜 기다림 끝에 배차를 나갈 기회들이 생겼지만, 후술할 발목 관련 문제로 인해 부대 내에서의 운전의 가능성의 문은 영영 닫히게 되었다.
2025년 3월 첫 휴가 (24년도 8월에 나갔던 신병위로’외박’ 제외) 때 밤마다 ‘왼쪽’ 발목이 시큰거리는 경험을 했다. 자고 일어나면 괜찮아지길래 휴가동안에는 내버려뒀지만, 부대에서도 이 증상이 지속되길래 병원에가서 진료를 봤고, ‘오른쪽’ 발목에 이단성 골연골염이 있음이 확인되었다. 양쪽을 모두 찍어보자고 한 의사의 판단이 빛났던 순간이었다.
결국 4월 후반부에 수술을 받게 되었다. 골수를 연골이 파인 부분에 심어 자라도록 하는 방식의 재생술이었다. 완전히 나아 다시 뛸 수 있게 되기까지는 1년이 걸린다고 했다. 따라서 글을 쓰고 있는 지금, 8월에도, 목발이나 보조 기구 없이 보행은 가능하지만 발목이 여전히 아프며, 뛸 수도 없다. 애초에 실수로라도 뛰려고 하면 갑자기 발목이 아프며 제동이 걸리는 느낌이 든다.
발목 수술 이후 몇 달간 입원한 채 지냈으며, 퇴원 이후로는 부대에 복귀했는데 수송부에 내려가 일을 할 수 없어 행정반에 납치당했다. 그 상태로 말년을 보낸 뒤 최종적으로 2025년 8월 12일에 전역하게 되었다.
앞서 이야기한 것 처럼 운전 대신 잡일이나 세차가 대부분이었던 일과에 대해서는 솔직히 자세하게 설명하려고 해도 별로 할 것도 없고, 별로 하고 싶지도 않으니 일과 외 활동들에 대해서 정리해보려고 한다.
위에서도 이야기 한 것 처럼 일과 외 시간에는 놀거나 공부를 했다. 개인정비시간에 공부를 해보는 것을 몇 번 시도해봤는데, 잘 되지도 않아서 그냥 깔끔하게 놀아버리고 연등 시간을 활용해서 공부를 했다.
초기에는 백준 문제를 푸는 것과 해석학 문제들을 푸는 것을 위주로 해왔고, 24년도 말기부터는 친한 동기와 함께 RISC-V CPU를 Verilog 를 이용하여 구현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이 동기가 위에서 이야기한 나의 친한 친구이다.
이 친구는 3월 군번 친구로 9월에 전역할 예정이다. 입대는 나보다 한 달 늦게했지만 야수교를 다녀오는 과정에서 나랑 자대배치는 같은 날 같은 부대 같은 중대로 받았다.
부대에 오고나서 초기에는 신병보호기간이라고 해서 거의 아무것도 시키지 않고 생활관에서 대기하다가 지휘관 면담 등을 하는 기간이 있다. 이 기간동안 급속도로 친해졌는데, 둘 모두 하드웨어냐 소프트웨어냐로 갈리기는 해도 컴퓨터공학이 전공분야로 일치하는 등 관심분야가 일치하는 것이 많았던 것이다.
그 친구와는 부대에서 많은 시간과 많은 추억들을 쌓았고, 관련해서 글들을 따로 쓸 수 있을 정도이지만 이 정도로만 이야기하도록 하겠다.
목표가 크게 3가지 있었다. 어쩌면 4가지라고 해야하려나?
다치지 않고 무사히 전역하기
해석학 교재 (Principles of Mathematical Analysis) 모든 문제 다 풀고 정리하기
solved.ac 클래스 6, 7 문제 모두 해결하기
현대대수학 예습하기
결론부터 말하면 전부 실패했다… 하나씩 따져보자.
일단 일상생활이 가능한 형태로 살아 돌아오기는 했지만, 다치지 않고 라는 조건에서 실패하고 말았다.
발목 수술을 받게 되며 이동이나 활동에 상당한 지장이 생겨버렸고, 그것이 군대 안에서 해결된 것이 아니라 복학을 하고 나고서도 한동안 안고 가야하는 페널티가 되고 말았다…
뛰기까지는 앞으로 8개월 정도는 더 있어야 하는 것 같은데, 앞으로 어찌될지 걱정스럽다.
여기서 모든 문제라고 호기롭게 적어두기는 했지만, Chapter 10 의 경우는 수업에서 다루지 않았던 내용이기도 하고, Chapter 11 의 르벡 적분의 경우는 다른 교재를 이용해 다뤘으므로, 제외하여 실질적으로 9개의 단원을 풀 것으로 목표를 조정해 둔 상태였다.
조정을 하면 뭐하는가 그마저도 못하는데. 일단 군생활 동안에는 Chapter 3 까지 문제를 전부 풀어내는 것은 성공했다. 풀이를 추가적으로 검증하고 정리하고 보완하는 작업도 진행해야겠지만 말이다.
목표 달성 실패와는 별개로, 스스로 칭찬해주고 싶은 부분은 있다. 3단원이면 9단원 중 1/3 에 불과하긴 해도, 어느정도 유의미한 성과였다고 생각한다. 가장 골칫거리였던 2단원을 모조리 뚫어내고, 그걸 끝내고 장렬히 산화한 것이 아니라 3단원까지 밀어냈기 때문이다! 그리고 3단원을 끝내고 장렬히 산화한 게 아니라, 4단원도 밀고 있다가 타이머가 울려버린 것이기 때문에, 목표의 성패 여부와는 상관없이 크게 성장하는데에는 성공했다고 스스로를 칭찬해주고 싶다.
마찬가지로 실패했다. 클래스 6 달성은 어찌저찌 성공했으나 7은 커녕 6 마스터도 달성하지 못했다.
이건 내가 중간에 백준을 하다 권태감이 심하게 들어 그만둔 것도 큰 부분을 차지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계획을 저버려도 되는 이유가 되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뭐, 내년도 PPC를 나갈 계획이 있기도 하고, 권태감도 사라진지 꽤 시간이 흘렀으니 슬슬 다시 밀려하면 밀리지 않을까 싶다.
아깝게 실패했다. 조금만 더 부지런했다면 성공했을 것이다.
처음에는 교재의 문제들을 풀어가면서 직접 공부하는 방식을 생각해봤지만 잘 될리가 없었다. 한 가지 다행인 건, 어떤 유능한 수학교육과 출신 버튜버 분1이 좋은 강의 영상을 올려주셔서 거의 다 봤다!
하지만 ‘거의’ 다 본 것은 다 본것이 아니다. 안타깝게도 실로우 정리 근처에서 내가 머리가 터져 쉬고 있었는데, 쉬다가 전역을 맞이하고 말았다. 따라서 결론은 실패…
사실 계획이랄게 별로 없다. 화요일 부터 시작되는 가족 여행을 다녀온 뒤로는 이제 포항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포항에 돌아가서 이 과목 저 과목 과제로 두들겨 맞으며 버텨내는 삶을 다시 살아야 한다.
일단 그 전에, 아주 짧게 남은 시간 동안 현대대수 강의는 완강하고 가려고 한다. 물론 그 버튜버 분의 강의가 끝난 것은 아니다. 하지만 현재 유튜브 업로드 분 기준으로 봤을 때는 현대대수학 1 범위까지는 전부 커버되기 때문에 괜찮다. 그런 의미로 완강인 것이다. 해석학이니 solved.ac 이니 하는 것들은 우선 보류해두겠다.
군생활에 대해서 하고 싶은 말이 상당히 많긴 하지만, 여기서 굳이 그걸 열심히 적고 있는 건 별 의미가 없을 것 같다. 지금은 달려 나아갈 때이다.
사람들은 흔히 주변의 남과 자신을 비교하면 불행해지기 마련이라고 하지만, 스스로의 위치나 상태를 확인하기에 비교만큼 좋은 도구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 관점에서 봤을 떄, 벌써 3학년이 된 내가 이뤘다고 할 수 있는 건 이 정도 밖에 없다.
POSTECH 입학
육군 병장 만기 전역
RISC-V CPU 구현 프로젝트2에 기여
물론 이것들이 별거 아니라는 의미가 아니다. 주관적으로 봐도, 객관적으로 봐도, 이 3가지 업적 모두 무시하지 못할 상당한 업적들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3가지만 가지고서는 내가 이루고자 하는 목표를 달성하는 데는 택도 없다.
POSTECH 은 명실상부 대한민국의 최고 수준의 공과대학교이지만, 전 세계에는 그런 ‘국가 최고 수준의 공과대학’ 은 무수히 많으며, 각 대학 안에 무수히 많은 인재들이 있다. 1번 업적은 앞으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데 있어 잠재력이 있다는 것 까지만 증명해주는 것이다.
육군 병장 만기 전역이라는 타이틀은 대한민국에서 성인 남성으로 살아가는데 있어 신체적/정신적으로 이상이 없는 사람임을 간단명료하게 증명하는 깔끔한 타이틀이다. 그러나 내가 원하는 건 전 세계적인 무대에서 활동하는 것이다. 국내에서만 활동하는 건 역으로 우리나라에게 내가 줄 수 있는 도움도 제한하게 될 것이다.
RISC-V CPU 구현 프로젝트는 내 동기와 함께한 프로젝트이다. 컴퓨터 구조 수업에서 사용할 전공책을 미리 구입해서 열심히 싱글사이클 프로세서까지는 구현했지만, 솔직히 파이프라이닝부터 시작해서 이걸 FPGA 에 올려 검증하는 건 전부 그 동기가 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리고 싱글사이클 프로세서 제작도 GPT의 도움을 상당히 많이 받아왔다. 이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경력이 내가 컴퓨터구조 수업을 듣고 이해하며 과제를 수행하는데 상당한 도움이 되리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지만, 프로젝트가 창출해낸 학술적 가치를 내가 얻어낸 것이라고 주장할 정도로 뻔뻔한 사람이 될 수는 없었다. 이러한 성과들이 나름 대단하고 중요한 건 맞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함을 느끼고 있다.
부대에서도 계속 봐왔지만, 주변의 친구들은 모두들 열심히 달려나가고 있었다. 그냥 달려나가는 정도가 아니라, 한참 앞으로 치고 나가있는 상태였다. 전래동화로 비유하면 성실하고 꾸준한 토끼들이 게으르고 잠 많은 거북이가 나무에서 자고 있을 동안 폐가 찢어질 정도로 열심히 달려나갔던 것이다. 실제로 내 친구들 대부분 나보다 훨씬 좋은 학점을 유지하는 상태로 (이건 다들 거의 기본으로 깔고 들어간다…) 취업을 해본 경험이 있다거나, 학교에서 추가적인 장학금을 받았다거나, 랩실에 들어가서 열심히 연구를 진행한 경험이 있다거나, 포카전 AI 선수단을 훌륭하게 이끌어 학교에 영예를 안겼다거나, 특정 분야를 깊게 파서 이미 논문을 작성한 경험이 있다거나, 여자친구가 있다거나 하는 내가 갖지 못한 그런 무시무시한 경력들을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이번 3학년의 컨셉은 ‘증명’ 이다. 나에게도 저런 어마무시한 업적을 이뤄낼 힘이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자 한다. POSTECH 이라는 방패는 곧 사용기간이 만료된다. 내가 내 주장이나 생각을 당당하게 말해도 바보 취급받지 않고 존중받을 수 있었던 것은 내가 이제까지 해온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사라지면 무엇도 나를 지켜주지 않는다. 이제는 새로운 방패를 만들 때가 된 것이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증명할 것인가 하면, 크게 3가지로 나눌 수 있겠다.
학점 관리의 경우는 말 그대로 학점을 관리하는 것이다. 이제까지 나는 매주 나오는 과제를 하는데 급급하여 제대로 공부를 하지도 못했고, 공부를 한다해도 ‘성적을 잘 받기 위한’ 공부를 해오지 않았다. 이런 공부가 진정한 의미가 있는 공부인지 아닌지에 대한 논의는 지금의 나에겐 의미가 없다. 왜냐하면 지금 중요한 것은 ‘증명’ 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학점 관리를 위해 전반적인 생활 습관 개선부터 시작해서 공부하는 방식, 습관, 전략 등을 다양하게 시도해보고 수정해볼 계획이다.
자기 관리의 경우도 말 그대로 자기를 관리하는 것이다. 이건 학점 관리와도 어느 정도 연결되는 구석이 있다. 내가 2년간 POSTECH 을 다니면서 학점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데에는 여러 원인이 있지만,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는 불규칙한 생활 패턴이라고 생각한다. 생활 패턴이라는 것은, 식사/수면 등 생활에 있어 기본적으로 잘 갖춰져야 할 여건들에 대한 패턴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런 부분들을 우선적으로 고쳐나가는 것부터 자기 관리를 이뤄낼 계획이다. 물론, 학점과 관련된 자기 관리만을 할 계획은 아니다. 나의 용모를 가꾼다거나, 패션을 완벽히는 몰라도 공부하는 시늉이라도 한다거나, 좀 더 인간 관계를 잘 이끌어 나가기 위해 스스로의 나쁜 습관을 고쳐본다거나 하는 노력들을 해볼 것이다.
AI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건, 며칠 전에 만났던 고등학교 친구와 계획한 프로젝트이다. 그 친구도 나도 모두 AI, 특히 ChatGPT 같은 LLM 에 관심이 있는데, 이러한 거대 언어 모델을 직접 구축해보고 성능을 개선하기 위한 연구들을 진행해볼 계획이다. 군대에서 다른 친구와 진행했던 CPU 프로젝트의 성공으로 어느정도 자신감과 아이디어를 얻어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평소쓰는 블로그 글의 마무리치고는 꽤 긴 편이다. 마지막 문장으로 군대에서 만난 친구의 말을 인용하며 글을 마무리하겠다.
그렇기에 내가 갈망하는 미래가 올 것임을 믿고 나아가는 수 밖에 없다.
1: https://www.youtube.com/@math%EC%97%B0%EB%96%A0
2: https://github.com/RISC-KC/basic_rv32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