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10년간 살았던 집을 떠나 새로운 집으로 이사를 가는 날이다. 어디에서 어디로 가는지는 개인정보라 정확하게 말할 생각은 없지만, 더 좋은 곳으로 이사간다는 정도는 이야기해도 될 것 같다.
집에 좋고 나쁨이 있냐고 따지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굳이 따지자면 더 좋은 쪽으로 이사를 간다는 의미다. 편의 시설은 새로 이사가는 쪽이 훨씬 많기 떄문에 더 후한 점수를 준 것 뿐이다.
어쨌든 며칠 간은 이사 준비로 매우 분주했다. 이번 글에서는 이사를 가며 피아노와 작별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이사를 가는 것에 대해 한 가지 더 이야기를 하자면, 더 작은 집으로 이사를 가게 된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는데, 일단 큰 집은 비싸다. 그리고 내가 포항에서 기숙사 생활을 하기 때문에 예전만큼 넓은 공간이 필요하지 않게 되었다.
물론 내가 하려는 이야기는 더 좁은 집으로 이사가는 이유가 아니다. 더 좁은 집으로 이사가야헀기 때문에 일어난 일들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좁은 집으로 이사를 가면 모든 물건을 들고갈 수는 없게 된다. 그건 물리학적으로 당연하다. 그래서 우리 가족들이 여러 가지 물건들을 처분하는 것을 봤다.
그 중 하나는 피아노였다. 우리 집에는 어쿠스틱 피아노4가 있었다. 그 피아노는 내가 아마 초등학생 때부터 쳤던 피아노였을 것이다. 새로 이사가는 집은 앞서 말했듯이 공간이 충분하지 않아서, 만약 피아노를 새 집에 두려면 안방에 두어야 했다. 부모님께서는 피아노를 어떻게 처분할지 결정하기 전에 나에게 먼저 물어보셨다.
나는 어짜피 피아노가 본가에 있다고 해도 대부분의 시간을 포항에서 보내야하기 때문에 별 의미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고, 피아노가 사라지는 것이 아쉽다고는 해도 나 한 명 때문에 그 피아노가 많은 공간을 차지하는 것은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해서 내 동생이 원하는 대로 해달라고 했다. 그리고 내 동생은 전자 피아노를 필요로 했기 때문에 최종적으로 피아노는 처분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그런데 처분하는 과정에서 한 가지 이슈가 있었다. 피아노가 너무 오래된 피아노라서 그런지, 처분했을 때 가격이 5만원 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듣고 좀 화가 났었다. 물론 화가 났다고 해도, 얼굴이 새빨게지고 머리가 어지럽고 감정이 주체가 안되는 식으로 화가 난 것은 아니다. 단순히 ‘이해할 수 없다’, ‘기분이 나쁘다’ 보다는 좀 더 격한 감정이 들었던 것 같다.
화가 난 이유를 생각해보자면, 물론 가정 경제에 보탬이 될 수도 있던 것이 고작 5만원3밖에 안된다는 것도 있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나와 함께 했던 추억이 있는 피아노가 고작 5만원이라는 사실에 화가 났던 것 같다. 초중고 시절을 보내며 이런저런 곡을 연습해는데 썼던 그 피아노가, 겨우 5만원이라니. 지금 생각해도 5만원은 너무 후려치기가 심한 것 같다. 결국 피아노는 지인이 마침 필요했던 참이라 넘겨주기로 결정했다. 그냥 헐값에 팔리는 것보다는 훨씬 나은 것 같다.
조금 이상하고 신기하다고 느꼈던 것은 나도 모르게 그런 추억이 내 뇌에 깊게 각인이 되어있는 것 같다는 것이다. 피아노와 헤어진다고 해서 심한 감정의 동요가 있지는 않다. 당장에 내가 여지껏 모아왔던 큐브도 처분하려는 마당에, 피아노와 헤어지는 것은 아쉽긴 하지만 슬픈 정도까지는 아니다. 그럼에도 왜 나는 그 피아노가 5만원 밖에 안한다는 사실에 그렇게 화가 났던 것일까? 아마 나름 피아노와의 오랜 추억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어쨌든 피아노는 버려지지 않고 다른 가족에게 넘어갔기 때문에 여전히 제 기능을 하게 될 것이다. 보내기 며칠 전에 마지막으로 ‘소녀의 기도’를 연주했었는데, 왼손 반주를 많이 까먹어서 틀리고 강약조절이 힘들다는 것 빼고는 내가 듣기에도 들을만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아쉬운게 좀 나아지긴 하는 것 같다. 근데 가만 또 생각해보니 아쉽긴 엄청 아쉽다. 항상 곁에 있었기 때문에 당연하게 느껴졌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뭔가 굉장히 마음 한 구석이 텅 빈 느낌이다. 본가에 돌아와서 칠 기회는 많았지만 별로 치지 않았는데, 갑자기 그게 좀 후회가 되기 시작했다.
어쨌든 피아노와는 이걸로 작별이다. 생각해보니 이 피아노에 이름이나 별명을 붙인 적은 한 번도 없었던 것 같다. 내가 ‘피아노’라고 하면, 피아노라는 개념을 말하기도 했지만, 머리 속으로 그려지는 이미지는 그 피아노를 항상 그렸던 것 같다. 내게 있어 그 피아노는 피아노의 개념 그 자체이기도 했던 것 같다. 아마 한동안 종종 생각나고 아쉬워 할 것이다.
계속 피아노 피아노 거리니 게슈탈트 붕괴현상이 일어나는 것 같다. 더 머리가 아파지기 전에 이사 이야기는 여기서 마무리 짓도록 하겠다. 오늘의 피아노 이야기는 여기까지!
1: https://github.com/ChoiCube84/B-Tree-cpp-implementation
2: https://en.wikipedia.org/wiki/Robert_C._Martin
3: Clean Code
4: 어쿠스틱 피아노라고 하긴 했는데 그게 정확한 이름인지는 모르겠다. 전자 피아노는 확실히 아니었고, 그랜드 피아노라기엔 그리 크지 않아서 어쿠스틱 피아노라고 말했다.
5: 물론 5만원은 큰 돈이긴 하지만, 피아노를 팔아서 5만원이 나오는 거면 큰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